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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
2019.12.15
해밀 2019.12.15

하자야 고마워. 

너를 만난건 2010년의 가을이었어. 

지금 생각해도, 수많은 우연이 겹쳤기에 가능한 만남이었지.

 

학교에 새로 온 선생님은 새로운 동아리를 만들었고, 그 새로운 동아리에 왔으면 좋겠다는 전단을 일일이 모든 반마다 붙이셨지.

그걸 보고 이끌리듯 그곳에 갔던 나는 2010 창의 서밋 행사 포스터를 봤어. 그리고 그 길로 하자에 참가신청서를 넣었었지.

'명문고'임을 자부하며 떠벌리는 우리 고등학교는 그런 포스터들을 '공부에 방해된다'며 반에 뿌리지 않고 그대로 버렸던 것이었겠지만,

그 선생님은 그걸 챙겨서 우리에게 보여줬고, 그 길로 나는 강동구에서 영등포구까지 향하는 먼 길을 오를 수 있었어.

 

그리고 그 첫 날, 나는 하자를 사랑하게 됐어.

999클럽에 모인 각지의 청소년들, 그리고 가장 먼저 마주한 순간인 steve barakatt의 the beating of a butterfly's wing. 

이름이 아니라 '브리스Breath'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진행자.

살면서 그 어디에서도 마주한 적 없는 순간이었고, 그토록 내가 원하는 공간이었음을 알았지.

그리고 아마 그 날이었을 거야. Earth Hour를 마주한 날은.

 

불 꺼진 하자의 본관, 2층에서 1층의 공연을 바라보는 그 순간은 잊을 수 없어.

18년 간의 삶에서 해결할 수 없었던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겠다고 생각한 순간이었고, 

이 시간만큼의 행복감을 당시에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고,

내가 믿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겠노라고, 난생 처음 확신한 순간이었고,

우리는, 더 나아질 것이라고 노래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순간이었어.

 

그 날은 왠지 집에 가기 싫어지는 날이었어. 그리고 그건 하자에 온 어느 날에나 그랬지.

 

창의서밋의 어느 일부 시간을 담당하는 그 행사를 위해 우리는 무던히 노력했고, 어쨌거나 마칠 수 있었지. 

그리고 고3이 되던 2011년엔 혹이심을 시작하게 됐어.

고3이라고 하지만, 나는 알고있었어. 이걸 지금 하지 않는다면, 나는 평생 후회할 것이고,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고.

그리고 20대 후반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확신할 수 있지. 그 때의 그 생각이 맞았다고.

 

혹이심을 하던 순간들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시간들이었던 것 같아.

우리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이야기한 워크샵, 이미지로 말하기 워크샵, 눈 맞춰보기 워크샵, 새로운 삶에 대해 이야기해준 수많은 연사들.

김가영, 변형석, 최원근, 염재승, 아움.

 

그리고, 수많은 '허심탄회'의 시간들.

그 자리에서 나는 그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을 수 있었고,

그 누구와도 공유하지 못했던 고민들과 생각들을 말할 수 있었고,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랬지.

 

시공간을 공유하는 이들이 하나로 연결된 듯 느껴지는 순간을 경험하는 건, 마치 마법과도 같은 걸, 그 때 배웠어.

삶을 이어나가고,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한, 지금의 삶에 감사하게 되는 시간들.

그 때부터 나는 내 이야기를 타인에게 하는 법을 배웠어. 

그리고 내 문제를 나 스스로 맞서 싸워나가며 더 나아가기 시작했지.

혹이심을 함께 했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허심탄회'를 '가장 중요한 시간'으로 꼽을 것이고, 스무살이 되어 혹이심을 이어가자던 우리의 목표도 그러했지.

 

'더 많은 이들에게 허심탄회의 시간을 만들어주자는 것'.

그만큼 그 시간은 우리에게 소중했어.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했던 건, 하자, 그리고 브리스, 그리고 우리들 모두였지.

하자였기에 가능했고,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이끌었던 브리스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우리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청소년들이 입을 닫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었기에 가능했지.

 

하자야, 나는 혹이심이 하자에서 아주 작은 순간이었다는 사실을 알아.

그리고 혹이심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공교육 학생들이 하자에서 무슨 의미인지는 나도 잘은 몰라.

사실 그 때의 나는 하자를 잘 몰랐어. 그저 이곳이 내가 나로서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는 공간임을 알고 있었지.

그랬기에 나는 하자의 주인이라고 생각했고, 그랬기에 하자의 곳곳을 자유롭게 방랑할 수 있었어.

 

난 알아, 하자는 그런 공간이란 걸. 

그 누구에게라도, 청소년들에게 공간과 여유를 맘껏 내어주는 곳이라는 걸.

그리고 또 알아. 공교육의 수많은 학생들에게도 하자가 필요하다는 걸.

어떤 우연으로 내가 하자에 닿았을 뿐, 나여서가 아니라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하자가 절실하다는 걸.

난 알아,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하게 배웠어.

 

성인이 된 이후 내 주변의 친구들을 보며, 더 확신할 수 있었어.

청소년기에 유예되고 풀리지 않은 고민들과 방황은 사라지지 않고 새겨지기에, 언젠가는 개인의 삶에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걸.

그 모든 청소년들에게 하자가 있었다면 지금 그들이 겪는 고통은 다른 종류의 것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연락을 잘 하지 않는 친구가, 교환학생을 떠난 유럽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를 토로할 때, 그리고 그 친구가 그 고통에 지쳐 귀국했을 때.

 

왜 우리에겐 하자가 하나밖에 없었을까.

왜 우리는 하자를 만날 수 없었을까.

절실하게 안타까웠어.

 

왕복 2시간이 넘는 거리를 매주 오가는 것이 지쳐서, 농담 삼아 '우리 동네에도 하자가 생겨야 한다'고 얘기했지만,

사실 그건 진담이었어. 우리 나라에는 조금 더 많은 '하자'가 필요해.

 

20대가 되어 지역에서 청년활동을 하던 때, 송파구에서 하자와 비슷한 공간을 갔어.

그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책을 읽고, 요리를 하는 청소년들을 보며 괜시리 행복했어.

이 공간에서만큼은 저들이 자유로울 수 있기를, 그리고 그럴 수 있어서 좋았어.

 

하자야, 난 믿어.

10대의 시간은 삶의 전반에 영향을 끼칠만큼 중요한 시간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10대의 시간과 고민들이 전부 유예되고 묶이고 있고,

10대는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받기 어려운 세상이지.

그렇기에 여전히 세상에는 하자가 필요해.

그렇기에 브리스에게 나는 "더 많은 혹이심이 생겼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었지.

 

하자에서 밤을 지새웠던 수많은 시간들,

하자에서 함께 다큐를 보고 토론했던 시간들,

하자에서 그 어디에서도 얘기하지 못한 세상의 수많은 주제를 가지고 놀았던 시간들,

하자에서 함께 음식을 먹던 시간들,

하자에서 함께 사진을 찍던 시간들,

하자에서 함께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뛰어다녔던 시간들,

하자에서 함께 노래를 불렀던 시간들,

하자에서 함께 누워 우리의 미래를 이야기했던 시간들,

하자에서 스토리콘서트를 열어 '진짜 내 이야기'를 털어놓았던 시간들,

하자에서 나 자신의 삶과 더불어 '우리의 삶'을 고민했던 시간들,

하자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을 겪으면 겪을수록, 그 생각은 확고해질 수밖에 없었어.

하자야, 넌 그런 존재야.

수많은 청소년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공간.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미래를 선사해줄 수 있는 공간.

 

 

20주년 행사에서 오랜만에 하자를 다녀왔어.

하자의 7가지 규칙이 얼마나 새롭게 보였던지.

2010년에는 그저 '재밌네'하고 넘겼던 수많은 하자의 고민들이 얼마나 앞서나가고 진지하고 필요한 것들이었는지.

왜 아직도 우리 사회는 2000년대 초중반에 하자가 했던 고민의 절반도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건지.

오히려 그 이전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느낌만 받게 되는건지.

 

그런 거였지. 

청소년도 흡연을 해도 되는가란 고민과 토의 끝에 흡연실에서 함께 피워도 된다고.

그리고 그 공간에는 흡연의 단점이 적혀 있고.

정말 '하자스러운' 생각이었지. 

 

하자야.

난 너에게 배웠어.

그 모든 걸 이야기하자면 '괜찮아'였어.

 

지금 나, 괜찮아.

지금 우리, 괜찮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들, 괜찮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 괜찮아.

그리고, 세상은 괜찮고, 더 괜찮아질거야.

 

그건 무조건적인 위로가 아니라, 세상이 이야기하고 있는 하나의 기준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얘기였지.

세상이 말하고 있는 방식대로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아.

세상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살지 않아도 괜찮아.

세상이 너를 보고 틀렸다고 해도 괜찮아.

 

중요한 건, 세상이 이야기하는 기준이 아니라, 

진짜 '내'가 고민하고 있는 생각이자 삶인지. '진짜 내 이야기'인지. 그것에 집중하라는 '괜찮아'였지.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아.

조금 더 다른 삶을 그리고, 조금 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어.

여전히 싸워나가고 있는 문제이지만, 그 시야를 '틔우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또 중요한 일인지도 배웠으니까.

'모의고사 성적'이 내 삶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내 고민이 무엇인지가 내 삶을 결정한다는 걸 배웠으니까.

 

혹이심의 카피는 '성적, 연예인 얘기말고 다른 얘기하고 싶은 청소년 모여라'였지.

난 알아, 세상에는 이 카피가 조금 더 필요하고, 이 카피에 목마른 청소년들이 많지.

비록 혹이심은 2013년으로 공식적인 활동을 끝맺었지만,

난 혹이심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아.

 

20년이 된 하자가 피운 수많은 나비의 날갯짓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듯,

혹이심이 일으킨 바람들도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있고, 그것은 다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야.

 

고마워 하자야!

너가 있어서 내 삶은 의미를 찾을 수 있었고,

너가 있어서 우리는 더이상 외롭지 않을 수 있었고,

너가 있어서 살아있을 수 있었고,

너가 있어서 우리는 길을 찾아 나설 수 있었고,

너가 있어서 나는 나로 존재할 수 있었고,

너가 있어서 우리는 행복할 수 있었어.

 

고마워 하자야!

그리고 20살 생일을 축하해.

내가 너와 함께 자라왔듯,

너는 수많은 청소년들과 함께 또 자라오겠지.

 

20주년 파티에서 마주한 하자는, 조금 어색하고, 예전처럼 맘편히 있기 어렵게 느껴지더라구.

물론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 것이었지만, 이젠 그 자리를 메우고 있는 청소년들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지.

 

하자야, 그 모습이 좋았어.

마치 과거의 나처럼 하자를 움직이는 청소년들이 있으니까.

나는 하자를 떠났지만, 하자는 또 다른 청소년들이 메울 것이니까.

그리고 그만큼 수많은 날갯짓들이 피어나기 시작할 것이고, 이 사회에 변화의 바람들을 만들어 낼테니까.

내가 더 이상 하자의 주인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이 조금도 아쉽지 않아.

 

하자야, 지금까지 20년 동안 그랬듯, 여전히 청소년들의 공간으로 남아줘.

여전히 수많은 이들에게 '하자의 메시지'를 전해줘.

그리고, 다시 한 번 생일 축하해.

 

20살 생일을 기념해, 내가 처음 마주한 노래를 함께 듣자.

 

You know the time has come to make some changes

당신은 변화를 줘야 할 시간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To rage against the world the shape it's in
지금 형태의 세계에 저항하기 위해

 

But working on my own the only difference I can make
그러나 내가 내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일한 변화는

 

Is just the beating of a butterfly`s wing

단지 나비의 날갯짓 한 번에 불과하죠


Way across the world a child goes hungry

세계 저편에서 한 아이가 배고파해요


Just terrified of what each day might bring

매일매일이 가져올 것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어요 

I got to realize each tiny gesture I can make is just the beating of a butterfly`s wing

난 내가 할 수 있는 각각의 작은 몸짓들이 단지 나비의 날갯짓 한 번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But it grows and it grows
하지만 그것은 자라고, 그것은 또 자라죠


As the laws of chaos show

카오스 이론이 보여 주듯이

 

As it grows and it grows

그것이 자라면서, 또 자라나면서


We can change the world we know
우리는 우리가 아는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죠


Revolutions can begin

혁명이 시작될 수 있죠


And a hurricane can spin

그리고 허리케인이 휘몰아칠 수 있죠

From the beating of a butterfly`s wing

나비의 날갯짓 한 번으로부터


Like far across the frozen southern ocean

남쪽의 저 멀리 얼어붙은 바다와 같이

The melting ice is getting very thin

녹아내리는 얼음은 상당히 얇아지고 있어요


But if I try to stand alone to hold the flood at bay

그러나 만일 내가 혼자서 홍수를 막으려고 선다면


It`s like the beating of a butterfly`s wing

그것은 나비가 날갯짓 한 번 하는 것 정도에 지나지 않아요

But it grows and it grows

그러나 그것은 자라나고 또 자라나죠

As the laws of chaos show

카오스 이론이 보여 주듯이


As it grows and it grows

그것이 자라나고 자라나면서

 
We can change the world we know

우리는 우리가 아는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죠

Revolutions can begin

혁명이 시작될 수 있죠

 

Like a hurricane can spin

마치 허리케인이 휘몰아칠 수 있는 것처럼

From the beating of a butterfly`s wing

나비의 날갯짓 한 번으로부터

 

Cause all it takes it one small step to make us a start
우리에게 시작한다는 것은 작은 발걸음 한 번을 떼는 것이기 때문에

 

Nothing then can stop us if we`ve love in our heart

만일 우리가 우리 마음 속에 사랑을 가지고 있다면 아무것도 이제 우리를 막을 수 없죠


Cause it grows and it grows

그것은 자라나고 자라나기 때문에


As the laws of chaos show

카오스 이론이 보여 주듯이

And it grows and it grows

그리고 그것은 자라나고 또 자라나죠


As the fractals coil and flow

프랙탈들이 얽히고 섥히고 흘러가면서

Til the whole human race feels the wind upon its face
인류 모두가 그들의 얼굴에서 바람을 느낄 때까지


From the beating of a butterfly`s wing(X2)

나비의 날갯짓 한 번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