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 2019.12.09

 

1999년에 하자에 왔고 어리둥절했다.

그 당시 조한의 말씀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고, 대략 분위기 파악하다 뭐라도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시민문화작업장에 배치되었지만 시민문화가 뭔지 몰랐다. 사실상 시민문화의 정의도 모호했기에 그냥 해야 하는 일과 내가 하고 싶은 걸 했다. 당시 작업장 판돌들의 근무시간은 주6,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후 1시 출근, 10시 퇴근이었다. 밤을 새는 일도 빈번했고, 물론 밤새 놀기도 했다. 그 시절이 여전히 애틋하고 아련히 기억에 남는 건, 하고 싶은 일로 밤을 샐 수 있었고, 가까운 또래 동료들과 밤새 보낸 겹겹의 시간들 때문일 것이다.

지난 20, 기억에서 사라진 것도 있을 것이라 모두 기록하진 못하겠지만 생각나는 토막들을 그때그때 열어보려 한다.

하자에서 죽돌들과 벌였던 나의 첫 프로젝트 미술관 습격

한때는 큐레이터가 꿈이었던지라

지미니, 지지큐와 함께 큐레이팅을 했고 11명의 청소년들이 작가로 참여했다.

남이와 윤경이 퍼포먼스를, 원의 슬램 굿으로 오프닝을 했고,

전시 중 양승한&장준안의 마임과 남이의 퍼포먼스가 또 한차례 있었다.

지미니와 지지큐가 디자인하고 글을 썼고, 포스터와 리플렛, 사후 도록도 만들었다.

포스터에 내 얼굴을 대문짝만 하게 넣어 디자인한 지미니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좋아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다시 열어본 도록과 리플렛의 글, 사진, 포스터까지

유치, 재치가 다 있었고, 우리는 방자했다.

물론 어설펐고 더러 풋풋했다.

사후도록에 담은 대담에서도 밝혔듯,

미술관습격은 내게 그 무엇보다도 죽돌들과 함께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나는 나와 놀아준 그때의 지미니와 지지큐에게 감사한다.

 

지지큐, 너는 멀리 떠났지만, 나는 너의 가장 처음을 기억하는 판돌이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사라지지 않을 고마운 기억으로 너를 남길게.

스스로 잘 커서 촉망받는 작가가 된 지미니,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을 민희야,

공교롭게도 지지큐를 보내는 날 너무 오랫만에 다시 만났지만, 우리 이제 아주 가끔씩이라도 얼굴 보며 살기로 하자.

 

미술관습격.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