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강구야
2019.12.09
강구야 2019.12.09

그런 날이 있다. 

주위가 희뿌여지며 휘청이게 되는 날

한없이 꺼지는 바닥으로 주저앉고 싶은 날

어느새 난 그곳에 서 있다. 

해와 달과 바람과 별과 나무와 새

어제와 오늘과 내일과 친구와 이웃과 삶의 이름으로

부르고 불리며

시를 짓고 그리고 노래하며 떠들썩한 마을

무심한 눈길이 지나치는 사람들의

구석이나 어귀에 웅크려 앉았어도

내 자리인 듯 존중받는 그곳

그거봤어 비밀인데 걔말인데 어제말야 

그래서 

꼬리를 무는 소문이 소동이 되고 소란이 되어도

어른과 젊은이와 아이들이 둘러앉으면 

금새 마을의 합창으로 남게 되는 곳

그래서 

센척 약한척 섬세한척 쿨한척 뭐든 척척 하는 척

타고난 척을 아닌 척 없는 척 하지 않을 수 있어

친구가 되는 곳

파랑과 빨강으로 남녀가 구분되는 건 당연하지 않고

어린이든 어른이든 함부로 마주하지 않는 건 당연하고

열심히 착하게 예의바르게 사는 건 당연하지 않고

하고 싶은 사람만 하고, 하기 싫을 때 하지 않는 건 당연한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다고 하고

지금껏 당연하지 않았지만 앞으론 당연해야 한다고 하는

그래서 새벽 드는 낯선 찬 바람처럼

번쩍 깨어나던 시간들

산다는 건 익숙한 걸 견디는 거 같아요.

그렇게 견디며 고요, 풍요, 익숙한 담요 안에서

내다보지 않아도 아는 듯 익숙해질 때,

가라앉고 싶어질 때, 견디는 게 지겨워질 때 

그런 날에는 잠시 바닥에 쪼그려 앉아

언젠가 그곳으로 

그곳에 있던 내게로 부는 바람을 느껴본다. 

그리고 쓸데없이 불룩한 주머니를 비워

그 바람을 담는다

맘껏 가난하며 신났던

함께 했던 그날들로 채운다. 

하자야 고마워 그렇게 그곳에 있어 내가 산다. 

하자야 축하해 이렇게 이곳에 내가 있어 산다.